연공못한친구를 은유하는 부분이 계속 있는데 러닝 중 서사를 삭제하는 건 또 예의가 아닐 것 같아서...? 근데 그렇다고 이 얘기를 안하자니 캐자 서술이 안되어서 대충 얼버무려 적었습니다(ㅠㅠ)

그... 로그가...
예...
갠록이네요(ㅈㅅ합니다) 마지막 *** 구분선 아래만 보셔도 될듯? 캐조종이심해요하하하핫핫핫핫아이건좀...?아닌듯?캐붕인듯?싶으시면수정하겟습니다.부디말씀을.

 

 

"그림자를 볼 때마다 너를 생각할게."

 

나니아 오닐라이트는,
29명이 비로소 온전하게 되었을 때에 생각했다.
지금이야말로, 독립해야 할 때다.

 




2061년 4월 23일, 그 이후. 제법 바쁘게 살았다. 기존 재산을 수습했고 이사를 했다. 도심에서는 멀지 않았고 창을 열면 바다가 보이는 곳이었다. 여러가지 증언을 했고, 시민권을 받았고, 얼굴을 감추지 않게 됐다. 이름을 거짓으로 말할 일이 없어졌다. 좋았다. 

애써 바쁘게 살면서 한구석의 공허함을 외면해왔다. 가장 큰 조각을 포함해 몇 자리가 비었다. 영원히 스물 아홉이 함께할 수는 없음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 역시 자신이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이별 역시도 자신의 것이다. 너희들을 독립시켜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꽤 괜찮았던 것 같다.

괜찮지 않을 때는 병원에 갔다. 코아틀의 존재가 매스컴에 밝혀진 탓에 과거의 일을 털어놓기는 어렵지 않았다. 전말을 털어놓지 못했던 지난 몇 년 동안에도 상담이 도움이 되지 않던 것은 아니었으나 "모든" 이야기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참 길게도 했다. 겪은 모든 일을 스스로 언어로 만들어 내뱉는 것은, 다른 아이들과 대화하는 것과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우리들끼리는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들이 있었지만 타인에게는 그럴 수 없으니까. 결론 하나,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꽤 도움이 된다. 결론 둘, 역시 전문가는 다르다.

 


그럼 나니아 씨는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나요?

글쎄요.

 


이때쯤 도서관이 완성되었다. 여러가지 법적 조건 상 서류 상의 관장은 다른 사람이었지만 건물부터 장서까지 손을 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자료의 절반을 아포슬 관련으로 채워둔 그곳은 하얗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나직하고 고요한 소음 속에서 나니아는 혼자 있는 시간이 제법 많아졌다. 그것도 나름 괜찮았다.

함께 있다는 건⋯ 혼자 있을 때에 비해 조금 더 좋은 거였다. (훨씬, 일 수도 있다.) 그냥 그 정도였다. 반드시 함께일 필요는 없다. 그게 "반드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요." 책 속의 누군가가 말했다.

계절이 지났고 연도가 바뀌었다. 여전히 바빴다. 수사국의 협조 요청을 받아 움직이기도 했고 전투에 휘말리기도 했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고 할 일도 남아있었으니 깨달은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들일 시간이 없었다. 그 시간에 수집한 정보를 도서관에 쟁여놓고 다른 아이들과 교류하기나 했지.

 



2063년 5월.

분위기는 뒤숭숭했고 불온한 것을 감지해낸 나니아 역시 한층 예민했다. 옆 사람이 신경쓰일 수밖에 없었다. 괜찮으냐고 재차 물었다. 그렇지 않을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럴 사람이 아니니까. 그러나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눈 앞에 선이 그어진 것 같다. 혹은 하얀 벽이 세워졌거나. 이럴 때에 자신이 무엇을 하든 상대방에게는 닿지 않고 벽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았다. 두려웠다. 그것을 깨닫자 이후는 감정에 휩쓸렸다. 과거로부터 도망칠 수도 벗어날 수 없다는 찐득한 감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이대로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대로, 여기 갇혀서, 의미없는 말과 의미없는 행동을 반복하면서. 계속⋯⋯

 

 

널 걱정하는 마음은 진짜인데 그게 의미없는 일이 되는 게 무서워서 옆에 있을 수가 없어⋯

 

 

나직한 고해를 속삭였다. 이해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가 견디지 못해 도망치는 것이다. 이건 비겁한 짓이다.

 

 

힘드니까 곁에 있지 않으려는 거야. 내가 무력감을 느끼게 만들어. 난 그러고 싶지 않아.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소중한 것을 스스로 잘라내는 것이지만⋯ 괜찮았다. 자신의 일부를 잃는다는 건 처음도 아니고. 타의로 당하는 것보다야 자의로 해내는 게 더 좋을지도.

 

 

잘 지내.

 

 

뒷모습이 완전히 멀어질 즈음에 작게 말했다. 초인류의 청력으로는 들렸을 것이다. 사실 들리지 않았어도 상관없었다.

 

이후로도 시간은 정직하게 흘렀다. 날짜가 지나지 않거나 하루가 천년처럼 길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헬리오스가 없는데도 해가 뜨는 일은 좀 신기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뿐이었다. 매년 받던 생일 축하에서 한 자리가 빈 것도 대수롭지 않았다. 돕던 일이 흐지부지 되니 여유시간만 늘었다.

 

 

2063년 10월. 다시 얼굴을 본 것은 반 년이 조금 덜 지났을 때였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피하진 않았지만 굳이 나서서 대화를 트지도 않았다. 그 외에는 각자 할 일을 했다. 별 일 없이 다시 보냈다. 이번에도 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시간이 또 지났다. 별다른 일도 없었고 아무렇지도 않았다. 4월 23일 이후로 그는 늘 공허했다. 빈 자리가 조금 넓어진들 다를 것도 없었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2063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다른 이들과는 저녁에 만나기로 했으므로 나니아는 오전에 시간을 내어 오닐 가家 막내, 나리 오닐과 함께 아포슬로 이루어진 극단의 공연을 보기로 했다. 로우 새틀라이트였다.

직접 골라 입힌 털망토와 벨벳 원피스. 따뜻한 안감이 덧대진 구두. 막내동생을 품에 안고 무대 객석으로 향하는데 품 안의 그가 옷자락을 당겼다.

 

무대 앞쪽에 곤란한 사람이 있어, 오빠.

 

그 애는 능력 덕분인지 과거의 자신과 지나치게 닮은 면이 있었다. 무료해보이기까지 하는 얼굴로 주변을 본다던가 자신만 아는 이야기를 전한다던가. 그 심정을 모르는 것이 아니므로 나니아는 그가 의도하는 대로 움직였다. 자신 외의 사람이 곤란하든 말든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으니 동생이 떠밀지 않았으면 행하지 않았을 일이다. 그러니까⋯

 

특수효과를 맡은 아포슬이 급작스레 테러에 휘말려 나올 수 없게 되었다던가. 그래서 그 대신 도움을 주게 되었다던가. 그 일로 감명을 받은 쇼 책임자의 부탁으로 비정기적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던가 하는 일들. 얼떨떨한 얼굴로 동생을 보자 그는 그저, 잘 될 거야, 오빠. 그렇게 말하기만 했다.

 

 

얼결에 휘말려 맺은 인연은 생각보다 질기게 이어졌다. 아포슬의 능력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그 공연 관계자 목록에 < 오닐라이트 > 가 적힌 것은 겨울도 다 가기 전이었다. 친분도 쌓이고 대화도 나눴다. 대부분은 자신들의 능력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아포슬의 이미지를 바꾸고 싶어했고, 일부는 꽤나 급진적이었고 일부는 보수적이었다.

 

공연 아이디어를 얻거나 자료를 찾을 때에 도서관 회의실 한 칸을 통째로 내어주는 일이 많아졌고, 그런 식으로 세계가 넓어진 것을 깨달은 것은 봄이 되어서였다. 그 즈음, 개중 뜻이 맞고 도움도 될 것 같은 이들 몇몇에게 명함을 건넸다. 무슨 관계냐고 물어보면, 예전 친구에요, 하고 웃을 뿐이었지만.

그들이 그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시간은 또 흘렀다.

 


 

2064년 5월. 날짜를 기억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 년 정도 되었구나, 하는 건 날씨로 알았다. 날은 완연히 풀리고 바람이 조금 덜 건조해지는, 햇살 아래로 아이들의 목소리가 유독 잘 들리는 계절.

 

나니아는 도서관에 앉아있었다. 회의실에서는 다음 극 내용에 대해 상의하느라 시끄러웠으므로 테라스가 있는 휴게실이었다. 아포슬의 권리를 주장하는 내용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대한 의견은 풍자와 감동으로 나뉘어 팽팽한 접전 중이었다. 나니아는, 음, 아무래도 좋았다. 아포슬의 권리, 이미지, 싸움 같은 것들은. 그들과 친한 것과 별개로, 한때 길드 설립까지 도왔던 것과도 또 별개로, 그의 동생이 아포슬인 것과도 또 별개로⋯ 그는 평생 싸우며 살았는데 그 싸움이 아직 끝난 것도 아니었다. 코아틀 외로 심력을 쏟을 여유가 아직 없었다. 한가로운 생활도 나름 괜찮았다⋯ 라고,

 

핑계를 댔다. 그래, 아포슬 권리 운동 같은 걸 하면 다시 그와 만날 것 같아서 그랬다. 어쨌든 그렇게 헤어지기 직전까지 돕던 일이 바로 이것이었으니까. 당시의 일을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이제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기는 시간이 좀 지났잖아. 만나봤자 "안녕, 오랜만이네" 말고 무슨 다른 말을 할 수 있으려고.

간혹 떠올리긴 했다. 아주 가끔. 그림자를 볼 때마다 그 애를 생각하듯이. 태양빛이 눈을 찌를 때라던가⋯ 누군가 꽃다발을 건넬 때?

 

생각 이후에는 잘 지내려나, 하는 물음이 떠올랐다. 사이에서 멋쩍을 다른 이들에게 미안해서 필요한 일이 아니면 안부를전해듣지도 않았으니 그저 추측하는 수밖에 없었지만⋯ 잘 지내겠지. "괜찮다"고 했잖아. 네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괜찮겠지, 나도 그래.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았다. 바람은 선선했고 노을빛이 창문을 넘어 발치에 닿았다. 이렇게 될 미래였던 거다. 이렇게 될 예정이었던 거다. 이제 미래를 보지 않기로 했는데도 닥친 일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성정은 영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코끝에 미묘한 향이 잡혀서, 코와 입을 가리고 책상 아래로 몸을 굴릴 때까지는.

 

 

쾅! 아니, 콰아앙 이었나? 쿠우웅, 이었던가.

어쨌든 무언가가 폭발했다. 꽤 요란하게.

 

 

여기서 한 가지. 나니아 오닐라이트는 코아틀에서 탈출한 직후부터 사이비 교주 짓을 하면서도 단 한 번도 테러 따위는 당해본 적이 없었다. 애초 그 일은 소수를 대상으로 했고 자기 안전을 끔찍이 챙겼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안일했다. 아포슬 권리 따위를 주제로 올리는 극단과, 아포슬과 아포슬레이어, 심지어 과거 밝혀진 코아틀 관련 자료까지 쟁여둔 도서관에서 아포슬끼리 자주 만나? 단체가 노리기엔 소소하지만 개인이 노리기엔 참 쉬운 먹잇감이었다. 그러고보니 극단원 하나도 테러에 휘말린 적 있다고 했지. 무너지는 건물 밑, 다리가 부러진 책상 아래 작은 공간에 웅크려서야 이걸 생각해내다니. 정신이 빠졌다. 코아틀이 아니더라도 삶은 이미 전쟁인데.

 

다른 방에서 놀고 있던 UFO가 쌩하니 날아왔지만 휘말린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를 상황에서 자신만 빠져나갈 순 없었다. 혹시 전투를 해야 한다면 더욱 패널티를 겪을만큼 능력을 써서는 안 됐다. 초인류 아닌 사람들과 교감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이런 상황에 그런 걸 따지는 것도 우습지만 아무튼 그랬다.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숨죽이고 있었지만 이어지는 폭발은 없었다. 비명소리가 들렸다⋯⋯ 전투의 비명은 아니었다. 무기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단순한 폭탄 테러임을 반쯤 확신하고 나서야 UFO에게 매몰된 사람들을 구하도록 지시했다. 무너진 곳이 너무 깊어 자신 근처의 잔해를 치우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을 직감했고, UFO를 타고 빠져나가기엔⋯ 교감할 환경도 되지 못하는데, 다른 이들을 구할 만큼의 컨디션이 남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쨌든 자신이 지켜보지 않아도 UFO는 움직일 수 있으므로, 자신은 근처에 있을 몇몇 이들에게 연락을 보낸 후 웅크린 자리에서 숨을 골랐다. 보이진 않아도 UFO는 어렴풋이 느껴졌으므로 집중해야 했다.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는지 사방이 어둠에 잠겼다. 넷, 다섯, 여섯⋯ 사람을 흡수하고 다시 뱉는 감각이 머리를 찔렀다. 호흡이 점점 부족할 즈음 주변이 소란했다. UFO가 잠시 되돌아와, 회의실에 있던 아포슬들이 무사히 빠져나와 구출 작업을 이끌고 있다 전한 뒤 다시 지시를 이행하러 떠났다. 그제서야 안심한 몸이 잔해 속에 늘어졌다.

죽은 사람이 없기만을 빌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곳에서 죽는 사람은 내 안일함 때문에 그리 된 것일 테니까. 나 때문에 영영 소중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될 테니까.

 

음, 생각해보니 영영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이쪽도 이미 있었다.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지만. 하지만 역시⋯ 계속 안 보는 건 너무 슬플까? 그러지 말 걸 그랬나? 정말로 못 만나게 되기 전에, 얼굴 정도는, 볼 수 있을 때 봤어야 했나? 나는⋯ 후회하고 있나?

숨은 부족하고 시야는 어둠에 막혀 있으니 온갖 상념이 다 들었다. 아냐, 후회하지 않아. 그렇지만, 그럼에도.

 

사람에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 "함께"가 "반드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함께 있고 싶었다. 그래야만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러고 싶어서.

 

 

호흡이 완전히 멈추었을 때, 해가 떴다.

해는 조금 아까 졌는데도 그랬다.

 

 

미간을 찌푸린 채, 잔해 틈으로 비추는 햇살을 눈에 담는다. ⋯나니아! 외치는 목소리는 딱 1년 만에 다시 듣는 음색.

목소리를 내면, 초인류의 청각은 잡아낼 것이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안녕, 오랜만이네? 잘 지냈니? 별 일 없었니?

어쩐 일로 이런 델 다.

얼굴 안 보자고 했으면서. 

나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입술이 달싹였다. "보고싶었어."

 


 

나리 오닐은 나이에 비해 똑똑하고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존재만 알고 있었던 두 오빠를 다시 만났을 때에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마치 그 날이 올 줄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 외에도 오빠들이 집에 오는 날이라던가 언니를 데려오는 날은 아침부터 그것을 알고 혼자 몸단장을 하곤 했다.

 

그러니까 그 날도 그랬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를 번호로 보내는 메시지는, [ 나니아 오빠를 도와주세요. 도서관에 있어요. ]

 

이 짧은 문장에 비해 지나치게 거대한 것을 부르는 것이다.

긴 밤 뒤에 반드시 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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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

2022. 5. 9. 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