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둠이 무섭다고 했다.
그는 그 "하얀 방"이 무서웠다. 혼자 남는 게 무서웠다. 곁엔 아무도 없고, 아무도 자신을 봐주지 않고 아무도 자신을 들어주지 않고 아무도 자신을 생각해주지 않는 게 두려웠다. 초인류고 뭐고, 초재생이고 뭐고, 그게 죽음이지 다른 게 죽음이겠는가? "그럼 그 때 나는 죽는 거라고 생각하니? 기억을 잃게 된다면, 몸이 남아있어도⋯⋯" 당시 한 번 죽은 AD8251을 일부나마 살려낸 건 AD8250 이었다. 그럼에도 AD8251은 자신을 이루고 있었던 많은 것들을 영영 잃어버렸음을 깨달았다. 두 번은 하고 싶지 않다. 한 번만 더 이런 걸 당하면 그 때는 정말로 죽어버릴 지도 모른다고. 다시는 제 형을 보지 못하게, 영영.
그에게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
대략 만 명 가까웠을 AD-넘버링의 초인류들 중 AD8251이 만나본 것은 단 스물 여덟 뿐이다. 그는 초인류의 죽음을 본 적이 없다. 그는 한 번도 영원한 이별을 해본 적이 없다. 구역에 들어간 후 어느정도 지나서는 AD8250을 다시 만날 것도 알았으니, 영원한 이별이라는 건 상상조차 해본 적 없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는 구매 내역서에 대한 기록을 처음 봤을 때,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구매라는 것은, 즉⋯⋯.
자신의 소중한 것들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는 뜻이 된다. 자신조차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우리는 애초에 이별하기 위해 태어났다. 헤어짐을 목표로 살고 있었다⋯⋯. 나니아 오닐라이트는 어쩔 수 없이 그 하얀 방을 다시 떠올렸다. 10년 동안 기억 아래에 잠가뒀던 그 방을. 혼자 잠들지 못하는 것만 빼면, 가끔 그 때의 꿈을 꾸는 것만 빼면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곳을.
"누군가 꺼내줄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면 된다." 그 지시 이후 AD8251이 나니아 오닐라이트가 되기까지(된 것인지 돌아온 것인지, 아무튼.), 그리고 그 이후로도 그는 순종하며 휩쓸리기만 했지 스스로 움직여 상황을 바꾼 일이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대부분의 초인류들이 그렇겠지만 그는 유독 그것만을 철저하게 교육받은 개체였으므로. 남들이 생존하는 법과 협력하는 법을 갈고닦을 때, 몇 개월 동안 그는 그 하나만을 끊임없이 주입당했으므로. 그러니까, 그 교육은 결국, 이 순간을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구매자에게 팔려갈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면 된다."
나니아 오닐라이트의 뿌리는, 자아와 정신은 마리안 오닐라이트에게 두었지만 삶의 태도는 N구역에 두고 있었다. 거부할 수가 없다. 반항할 수가 없다. 극복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흘렀다. 들춰내서 다시 마주하기에 그는 너무 약했다. 그 시절을 다시 떠올리면 그는 그저 "기다려" 당한 개처럼 주저앉아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잠깐 한눈 팔면 멈춰설 것 같으니까, 그 흰 빛이 눈에 비춰지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니까, 이 구역에서는 도저히, 혼자서는 나갈 수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결국⋯⋯
너희들에게 울며 빌며 애원하는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제발 나도 데려가 달라고. 멱살을 잡아도 머리채를 잡아도 좋으니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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