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리안 / 니아라고 부르는 부분의 시간대는 오류가 아닙니다. (마리안 1부 프로필 맨 아랫줄 참고)
220318_연도수정

 

2045년 2월 4일――

니아, 기억 나? 우리 같이 있을 때 말이야. ▒▒가 가르쳐줬잖아. 오셀로 게임, 돌 뒤집는 거. 그래서 매일매일 시간 날 때마다 해서! 분명히 내가 223번 이기고 니아가 221번 이기고 22번은 무승부였지. 응? 기억 안 나? 너무 예전이라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니아가, UFO가 미래를 보여준다고 그랬잖아! 그래서 내가 예전에 물어본 적 있었는데, 그럼 미래를 보는 니아가 늘 다 이겨야 되는 거 아니냐고. 그런데 그 때 니아가 그랬다? 그런 방식으로 이기고 싶지 않다고. 그래서 그 날 니아가 졌잖아~ 그거 보고 ▒▒가 웃었었어. 가르쳐준 대로 잘 노는 것 같다고 되게 기뻐하면서 말했었지! 아,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나도 HYMN이 옆에서 자꾸 훈수 뒀다? 그런데 나도 그렇게 이기고 싶지는 않아서⋯⋯.

 

그리고 그거 기억 나? 실험 끝나고 나서 ▒▒가 기다렸다가 같이 놀아준 날, 그 때 우리 옷에다가 스프 엎질러서⋯,

 

한 번은 그랬잖아, 기억 나? 니아가 한동안 전혀 안 돌아와서 내가 ▒를 엄청 귀찮게 하다가⋯,

 

기억 나? 같이 책 읽다가 베고 자는 바람에 책 한쪽이 다 찢어졌던 거!

 

전에 말야, 니아가⋯⋯,

 

 

응, . 당연히 기억 나지.

 


 

2044년 ?월 ?일――

AD8250, AD8251, 사이가 굉장히 좋네요. 그렇네요. 아무래도~ 아무래도. 다른 구역으로 배치해야겠죠. 어쩔 수 없네요. AD8250은 뭐랄까, 너무 착하고⋯ 이득을 취할 줄 모른다고 해야하나? 좋게 얘기하면 착하고 나쁘게 얘기하면⋯⋯ 하하. 그래도 능력은 강하잖아요. 장점이 많죠. 발전시키면⋯ 기대되는걸요. 그만큼 제어도 잘 해야겠지만요. 그보다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진짜야? 아니더라도 현재의 출력은 이미 훌륭하니까 그것만으로 점수가 높죠. 능력은 수준이 높은데 개체가 문제네⋯⋯. AD8251도 비슷하네요. 이쪽은 크게 공격력이 높은 능력은 아닌데 활용이 기대돼요. 제어력도 벌써 뛰어나고요. 그 나이 치고. 하지만⋯⋯. 하지만. 성격이⋯⋯. 그렇죠. 너무 자기중심적이에요. 음, AD8250 말고는 다 싫어하죠. 성질도 보통이 아니던데. ▒▒ 정도만 제대로 이야기 나눌 수 있나? 까탈스럽고⋯⋯. 반항적이고⋯⋯. 협조적이지도 않죠. 와중에 배우는 건 또 빨라. 전에 군인이 혼잣말 한 욕 배운 거 알죠? 눈치도 드럽게 빠르고. 조금 뭐라했기로서니 얼마나 기분나쁜 티를 내는지⋯⋯. 교육이 좀 더 필요해요. AD8250 앞에서는 내숭에 내숭⋯⋯. 딱 그 정도가 보통 태도가 되면 좋을텐데! 사실, 둘이 딱 섞여서 평균 내면 적절할 것 같아요. 너무 붙어있어서 그런가? 곁에 있지 않으면 변하지 않으려나? 그렇죠. AD8250도,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많은 개체들을 겪다보면 나아질 지 모르고요. 그렇게 결정됐네요. 그래요. 그럼 구역은 역시⋯⋯. 마침 붙어있는 구역인데 MN은 어떤가요? 좋네요. 부디 혼자서도 훌륭한 효율을 내는 병기가 되어야 할텐데. 그럼 이대로 허가서 올리겠습니다.

 

 

2044년 ?월 ?일――

AD8250AD8251을 다른 구역으로 배치한다고요? 전 반대예요. 하지만 릴리, 이게 효과적이고 빠른걸요. 박사님도 허가했고요. 그, 그건 그렇지만 이 두 개체의 은 같이 있는 편이 아마 높은 효율을 낼겁니다. 검사 해봤어요. 하하, 그 말도 맞긴 한데. 우선 두 개체가 마지막까지 잔존할 거란 보장이 없고, 최종 잔존한다해도 오퍼레이션 이후엔 배치를 띄워놓을거라 같이 있진 않을 거예요. 그러니 혼자 있어도 효율을 내야죠. 아⋯ 그, 그런가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그럼 이대로 확정할게요~

* 220315 조사지문


 

AD8251의 최초의 기억은 누군가를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느정도 지난 후에는 그것이 거울이라 생각했고, 또 어느정도가 지난 후에야 그것이 자신과 똑 닮은 개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 기억, 그들은 “기계”라고 불리는 큰 물건들과, “연구원”이라고 불리는 큰 개체들과 함께 있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많은 일들을 했다. 이상한 기계에 들어가기도 하고, 팔뚝에 뭘 꽂기도 하고, 머리 위로 아롱지는 기묘한 빛을 잡으려 손을 뻗어보기도 했다. 머리는 다양한 강도와 다양한 방식으로 자주 아팠고, 붉은 색과 비릿한 향에 익숙해졌다. 잠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가 있었고, 그 때에는 자신과 닮은 그 개체의 옆에 붙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거나, 누군가 가져다 둔 책을 읽거나, 흰 돌과 검은 돌을 뒤집는 게임도 하고, 장신구를 궁금해하는 상대를 위해 나란히 귀를 내어주기도 했다. AD8251는 예민했으나 그와 있을 적만은 얌전하고 순해졌으므로 두 개체를 함께 두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리라는 기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인 물은 흐르지 못하는 법이라, 오히려 상대가 없을 적의 예민함이 더욱 심해지자 결국 두 사람은 각기 다른 환경(구역)으로 나뉘어 옮겨지게 된다.

UFO라고 불리게 된, 그의 주변을 떠다니는 빛무리는 그의 원래 성격만큼이나 포악했다. 툭하면 주변을 공격하고 괴롭히기만 해서 AD8251가 제일 처음 익힌 능력은 그것을 자신이 흡수해 머릿속에 가둬두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것은 못내 불만스러웠는지 어떠한 장면들을 계속해서 보여주길 시작했는데, 그 날 오셀로에서 진다던가, 한동안 사용하지 않은 기계에 들어간다던가, 고통 끝에 피를 쏟는다던가⋯ 처음에는 귀찮기만 했는데, 그것들이 모두 현실이 되자 AD8251는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끝내는 쌍둥이 개체와 떨어져 혼자가 된 장면을 보여주었을 때, AD8251는 “연구원”들에게 분노하며 악을 써댔고⋯ ⋯ 얄궂게도 그 행동이 두 개체가 갈라지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것이 보여준대로 이루어졌음은 말할 것도 없고.

* 1부 프로필

 


 

누군가 꺼내줄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면 된다.

 

x까⋯.

 


 

그딴 말 얌전히 들어줄 것 같아? 대체 이건 어떻게 여는 거야. 문도 뭣도 없잖아. 당장⋯⋯, 젠장, 이 녀석은 도움도 안 되고! 은 어디로 간 거지. 나랑 똑같은 곳에 있나? 아, 좀 열리라고! 부서지라고! ⋯⋯ 안 되잖아. 뭐 이렇게 튼튼해? 좀 더, 좀 더⋯⋯! 좀 더 강하게⋯⋯!

 

⋯⋯ 몇 시야. 얼마나 이러고 있었지? 시계도 없네. 다친 데 다 재생했고, 도 이러고 있을까? ▒▒는 왜 안 오지. 항상 끝나면 데리러 왔는데⋯⋯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해. 에게로 데려다 줘. 내보내 줘. 젠장, 다시. 나와. 다시 해보자. 이번에는⋯⋯

 

왜 못 나가게 해. 왜! 야! 너희들 다 듣고 있지! 다 보고 있지! 나와! 꺼내라고!

 

⋯⋯ 며칠 지났지?

 

⋯⋯

 

! ⋯⋯ 아, 지금이 아니네. ⋯⋯ 이거 진짜야? 만날 수 있어? 거짓말이지, 난 안 믿어. 짜증나게 하지 마. 움직이기나 해!

 

⋯⋯

 

⋯⋯ 며칠 지났지?

 

다시 만날 수 있어? 나갈 수 있어? ⋯⋯ 혼자가 아니게 돼? 거짓말이지? 나를 움직이지 않게 하려고⋯⋯

 

나는 안 믿어. 나는 안 믿어. 나는⋯⋯

 

싫어, 꺼져, 정신사나워. 보여주지 마. 나가!

 

나는 왜 여기 있는 거지⋯⋯.

 

⋯⋯.

 

착하게 지낼 테니까 내보내주세요⋯⋯.

 

⋯⋯ 안 통하네.

 

얼마나 지났지⋯⋯. 벽 넘어갈 수 있지. 갔다 와. ⋯⋯ 젠장, 어차피 보내봤자 내 눈에 안 보이잖아⋯⋯. 진짜, 뭘 해야 하냐고⋯⋯.

 

⋯⋯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

 

⋯⋯이십 오만 구천⋯ 몇이었지?

 

나는 왜 여기 있는 거지⋯⋯, 아. 착하게 지내지 않아서. 그래서였나⋯⋯?

 

⋯⋯나는 누구지⋯, , 니아. 아, 내가 니아구나.

 

리안, . 니아, 나. 그거 말고는, ⋯⋯ 아. 뭐였지? 모르겠다.

 

⋯⋯ 모르겠어.

 


 

구역을 나선 후 사흘 동안 AD8251은 아무와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다른 개체들을 무감한 눈으로 관찰하기만 하고 대부분의 시간은 방 안에서 AD8250과 보냈다. 안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딱히 비밀도 아닌, 물어보면 AD8250이 신나서 이야기해줄 정도의 구역 이전 기억들과 추억들 뿐이었는데도 AD8251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듣듯이 제 쌍둥이의 말을 들으며 응, 맞아, 그랬지. 나도 기억나. 정도의 대답만 하고는 했다.

 

기억은 연속적이다. 어제 한 걸음 걷고 오늘 두 걸음 걷고 내일 세 걸음 걸어서, 미래에 걸음 수를 세지 못할 곳으로 가게 되더라도 어제, 그제, 그보다 전날에 걸어온 궤적을 되짚으면 첫 발이 기억나지 않더라도 어쨌든 자신이 여기까지 걸어왔음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궤적이 끊긴다면, 기반을 잃어버린다면. 자신이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잃어버렸다면, 일주일 전을 기억해줄 그제도 그제를 기억해줄 어제도 없었다면, 그 사이의 공백을 건너뛰고 먼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이 동일인일까?

 

일깨워 준 쌍둥이의 도움으로 간신히 이어붙여 두었을 뿐, 나니아 오닐라이트는 기억의 뿌리를 자신이 아니라 타인에게 두고 살았다. 제 형제를 생각하는 태도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으로 집착적인 면이 있는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다.

 


 

2055년 3월 6일――

과거의 나도 나일까? ⋯⋯ 과거의 나는 나와 동일한 기억을 가지고 있으니 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럼 기억을 잃어버리면 내가 아니게 되는 걸까? ⋯ 테세우스의 배 이야기를 아니? ⋯역설의 난제를 들고오는군. 기억을 잃어버린다면 나를 구성하는 것들은 모조리 사라지는것이지. 그게 어떻게 나라고 할 수 있지? 그렇구나. 음, 그럼 그 때 나는 죽는 거라고 생각하니? 기억을 잃게 된다면, 몸이 남아있어도⋯⋯ 그래. 생명이라는 것의 본질은 몸이 아니라 정신에 있다고봐. 하지만 회복의 가능성이 있을 수 있잖니. 그럼 이 경우 부활이나 소생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기억의 회복은 존재의 회복이지. 그 의미의 연장선이라면 소생이라고 볼 수 있으려나. 보통 기억을 잃었다가 되찾는 사람을 보고 기적이 일어났다고 하지않는데⋯ 그런경우는 아무래도 본인은 기억을 잃었어도 주변인들이 그 사람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완연한 죽음으로는 안 보는 거겠지. 본인, 그리고 주변인의 기억이라⋯ 그럼 내 목숨의 일부는 내 옆사람에게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할 수 있겠네. 내 명제를 가정으로 둔다면―⋯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하나씩 나눠들고있는건가?

* 프라이탄과 대화

 


 

아, ▒▒라는 사람. 릴리 라는 이름의 연구원. 진짜 있는 사람이었구나. 그동안 한 번도 못 마주쳤나? 왜 못 알아봤지? 아는 목소리인데, 기억나는데⋯⋯.

 

 

나니아 오닐라이트는 아주 오랜만에 옛 기억을 들춰올렸다. 그림자조차 없는 방에서, 온통 희기만 한 빛에 바래 잃어버렸다가 쌍둥이에 의해 얼기설기 엮어진 소중한 것들. 자신이 살아왔음을 증명하는 것들. 릴리, 오셀로, 연구원. 코아틀의 사람. 우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줬었구나, 하지만 실패했구나. 약한 사람. 하지만 상냥하고 다정한⋯⋯, 오랜 시간동안 나니아와 HYMN의 모범이 되어 준 사람. 기억 났어. 그 삼일 간 형이 일깨워줬던 것처럼, 또 하나가.

 

 

기억났어. 알아버렸어, 곤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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