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 그에게 첫 기억을 선사한 좁은 세상엔 그의 쌍둥이와 연구원, 군인, 세 종류의 존재 뿐이었다. 개중 쌍둥이가 세상의 중심, 그리고 그 주변으로 아는 연구원과 자주 보는 군인과 새로 들어온 연구원 그리고 다시 만나는 군인 뿐. 우물 안에서 살아온 초인류는 시야 안의 좁은 하늘을 온 우주로 알고 살았다.

 

 

구역의 이야기를 생략하면 그의 다음 세상은 이전에 비해 비교적 넓어졌겠으나 그에 따른 충격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능력의 패널티를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과거에는 존재조차 몰랐으며 이후에는 간접적으로 예상했으나 한 번도 실제로 만난 적은 없었던, 자신과 닮지 않은 초인류들을 마주할 때에 역시 그는 전혀 놀라지 않고 시종일관 담담한 태도를 두르고 있었다. 오히려 그는 이틀 정도 방에 틀어박혔다 나온 후에, 그들을 마주하며 다정히 웃었다. 잘 부탁한다며 스스로를 소개하고 인사했다.

 

완벽한 첫인상이었다. 의젓하고 어른스럽다며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주변에서 보기에는 그랬다. 그렇다면 본인은 무엇을 느꼈는가?

 

그 때 어떤 감정이 들었던가?

애초에 무언가를 느끼긴 했었나?

 

 

그는 자신의 뒤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우주에 떠있는 듯한 감각만을 느꼈다. 저 멀리 미네르바가 있고, 다른 개체들은 그를 중심으로 바쁘게 공전한다. 그리고 자신은 개중 가장 먼 궤적에서, 한 발만 잘못 디디거나 미네르바의 중력이 조금이라도 약해지면 바로 길을 잃을 것 같은 상태로 하염없이, 아무리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는 궤도를 돌고 있었다.

 

 

그 녀석이 사사건건 방해를 했으므로, 열흘 가까이 함께하는 시간이 그런 그에게 어떠한 갑작스러운 감정을 불러일으켜주진 못했다. 희노애락은 고려할 가치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을 안쓰러워하거나 본심을 감추며 치대오는 아이를 귀찮아하거나 우는 얼굴이 거슬리거나 할 뿐.

 

헬리오스는, 개중에서도 특별히 귀찮은 쪽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왜 이러는지는 알 것 같은데 귀찮게 꼭 이래야 하나, 그런데 신경 안 쓰고 대충 넘기면 그게 더 귀찮아지겠지." 정도. 적어도 지금은 그것과는 다른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들어두면 도움이 될 줄 알았다. 사이좋게 지낸다는 것은 주변이 판단하는 것이고 이는 시선을 신경써야 하니까. 이 개체는 자신과 같은 것을 고려하며 지내는 듯하니 참고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데 영 쓸 데 없는 이야기 뿐이잖아.

 


 

구역 이전의 그는 지시받은 일을 하면서 지시받지 않은 일을 했고 끝내 지시받은 일을 거부한 후에 구역으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구역에서는 긴 시간동안 공을 들여 "지시받은 일만을 하는 법"을 교육받았다. 구역에서 나온 이후에는 아직 지시받은 일이 없었으므로 "다른 개체들이 앞으로의 팀원들이 될테니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을 지시로 받아들이고 이행했다. 비협조적인 개체로 낙인찍히면 감시당할테고 반항하면 구역으로 되돌아갈테고 그러면 쌍둥이와 헤어지게 되니까.

그리고 UFO는 계속해서 순종하는 미래를 보여준다. 그럼 본인은, 그럼 그렇지. 그렇게 중얼거림으로써 견고해진다.

 

 

다시 말하지만 열흘 가까이 함께하는 시간이 그런 그에게 어떠한 갑작스러운 감정을 불러일으켜주진 못했다. 다정하게 모든 개체들을 대한다. 다만, 한 걸음 떨어져서. 무언가를 욕심내지 않는다. 어차피 사라질 것이니 누군가 원하면 내어준다. 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니... ... 

 

"그 기분이야말로 먹으면 없어지지 않니?"

 

이 모든 감정을 나니아 오닐라이트는 굳이 감추지 않았다. 억지로 올린 입꼬리와 뒤섞여 나타난 미소는 분명 화를 내는 것 같았다.

 

"어차피 먹고 나서 똑같이 뼈와 살이 되는 거라면 굳이 맛있는 음식이어야 할 필요가 없지 않니." 목소리는 평소같다. "그냥 아무거나 입에 넣고 소화시키면 될 걸 왜 굳이 맛을 따져 먹고 그런 기분을 느껴야 하지? 먹어서 없어지면 아쉽고 다시 갈망하게 되고, 그런 비효율적이고 의미없는 감정을 굳이 느끼고 싶지 않단다." 표정도 평소같다. "이상하구나. 나를 걱정하는 거니? 아닐텐데. 너도 미네르바 님이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셨으니까 그렇게 하는 것 뿐이잖아." 평소... 같나? "만족해? 내 속마음을 들어서?"

 

그리 토해내고 나서는 다시 평소의 자신으로 되돌아온다. 무엇도 느끼지 않는 것 같은 얼굴로, "미안하구나, 갑자기." 그리고 미처 지워내지 못한 진심은...

 

'N_wri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둘이 바뀐 것 같아.  (0) 2022.02.22
Y  (0) 2022.02.19
둘이 반반씩 섞이면 좋을지도.  (0) 2022.02.15
미래의 내가 말했으니까. 그래서 말하는 것 뿐이야.  (0) 2022.02.13
D-day  (0) 2022.02.09